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 이곳에는 사각 기둥 모양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의 신전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 왜 낯선 이국땅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이국땅의 상징물인 양 말이다.
이집트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처음으로 옮긴 사람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다. 그것은 엄연한 약탈이었지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상황에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로마 황제가 이집트 파라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는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Ra)의 신전을 지키던 오벨리스크를 굳이 로마까지 가져와 해시계의 중심 기둥으로 삼았고 이후 황제들도 조직적으로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갔다. 그들은 전차 경주장이나 신전 앞 광장을 이것들로 장식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들의 손에 이끌려 부활됐다. 로마 교황들이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자 로마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오벨리스크를 교회 앞 광장에 세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붙인 채 말이다.
이로 인해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서방 열강들로 확대됐다. 약탈한 오벨리스크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명예와 부를 함께 손아귀에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서방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서구열강은 왜 이 비석에 집착했는가? 그것은 식민지 쟁탈에서 성공했다는 자국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한 동기에서였다. 그리고 태양신의 상징물인 만큼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서구선교 역사에 3G시대가 있었다. 정복자의 영광(Glory), 식민지에서 수탈한 황금(Gold), 그리고 하나님(God)을 한 그릇에 담고자 했다. (2005년 4월 20일자 국민일보, ‘오벨리스크의 눈물’ 제하의 기사)
오벨리스크가 없는 메트로폴리탄 주민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로마에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에도 있었다. 파리는 이미 하나 가졌고 런던도 최근에 하나 가졌다. 만약 뉴욕에 오벨리스크가 없다면 다른 모든 큰 도시들은 뉴욕을 우습게 볼 것이다. 그들은 뉴욕이 오벨리스크를 가질 때까지 결코 당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떠들어댈 것이다. (1881년자 뉴욕 헤럴드, 이집트 이스마일 총독이 미국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하기 전)
현재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13개를 포함하여 이탈리아에 무려 16개가 있으며 영국에 3개, 프랑스에 2개 그리고 터키와 미국, 이스라엘에 각 1개씩 있다. 이집트에 남아 있는 수(6개)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특히 오벨리스크의 약탈을 주도했던 장본인인 만큼 로마의 비율이 두드러진다. 대부분 로마 가톨릭 성당 앞에서 세워진 것들이다.
가톨릭은 오벨리스크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얘기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굳이 사라진(?) 종교의 유물을 세우면서까지 그 승리를 자축했어야 했을까. 이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겠다는 가톨릭의 이념과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성경에서 오벨리스크는 깨뜨려 없애야만 하는 우상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승리란 우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리고 (역대하 34:4)
그가 또 애굽(이집트) 땅 벧세메스의 주상(柱狀)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예레미야 43:13)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께서 추구했던 승리의 방식과 정반대의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위에 세움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과연 오벨리스크는 그들의 말처럼 십자가와 성광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을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태양신 신앙을 상징하는 사각뿔 형태의 석상 ‘벤벤석’에서 유래됐다. 이집트 신화에서 벤벤은 태초의 물 누(Nu)에서 솟아오른 언덕이다. 이 위에 태양신(아침: 케프리, 낮: 라, 저녁: 아툼)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벤벤과 태양신을 동격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 형태를 본떠 만든 벤벤석을 태초의 태양빛이 가장 먼저 닿은 장소, 성스러운 바위로 믿었다. 이후 태양광선처럼 길쭉한 사각형 기둥이 더해져 오늘날의 오벨리스크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집트 후기 왕조에 이르러 벤벤석 신화는 오시리스의 남근 신화와 합쳐졌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신에 대한 숭배의식은 이처럼 더욱 강화되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태양신 숭배물이다. 그것은 태양신의 구현을 염원하는 자들의 가장 극적인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태양신 상징물을 굴복시키겠다고 덧붙인 십자가와 성광은 무엇일까. 태양신을 타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십자가와 성광 역시 타파해야 할 우상에 불과하다.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 되기 전부터 태양신의 상징이었으며 방사형으로 빛을 내뿜는 태양 형상의 성광(聖光) 역시 그 자체로 태양을 의미한다. 결국 태양신 숭배물인 오벨리스크에 태양신 숭배물인 십자가와 성광을 장식한 꼴이다.
로마 가톨릭이 세운 오벨리스크, 그것은 결코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지 않는다. 본래 이집트인들의 태양신 숭배물인 것처럼, 지금도 태양신 숭배물이다. 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댓글 없음:
댓글 쓰기